여행지/러시아

[러시아 여행] 4.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야기 - 1편

leatherjean 2017. 2. 11. 02:46

지난 포스팅


2016/07/05 - [행선지/러시아] - [러시아 여행] 1. 첫 해외여행 (광주->인천공항->블라디보스톡)

2017/01/26 - [행선지/러시아] - [러시아 여행] 2. 블라디보스톡 북한식당 평양관 탐험기

2017/01/27 - [행선지/러시아] - [러시아 여행] 3.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기

2017/02/11 - [행선지/러시아] - [러시아 여행] 4.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야기 - 1편





상상 속에서만 마주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직접 탑승했을때,

 가슴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솟아났다.


여행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던 어린시절,

나는 현실을 논하면서 그것을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 단정 지어버렸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답답하고 어리석은 생각이겠지만,

당시 어렸던 나에게 100만원 이상의 돈은 매우 큰 돈처럼 여겨졌었고

그 큰 돈을 잠깐 다녀오는 여행에 소비하는 것은

내 수준에서 누릴 수 없는 사치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어릴때 내재되어있던 불가능이란 생각이

내 안의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있다가,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고 그것을 실현한 순간에

더 큰 성취감으로 변화해서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던거 같다.


-

-

-


들끓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횡단열차 내부로 들어가서

우리의 자리를 찾아갔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 내부 모습 (3등석) -


횡단열차의 내부모습은 이러했다.

딱 예상했던 만큼이었고, 

번호가 낮은 열차라 그런지 블로그에서 본 것보다 청결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지저분한 시트는 바닥에 까는 매트이다.

열차에는 각 칸마다 차장이 존재하는데,

출발하고 나서 그 분들이 시트와 배게커버를 나눠준다.

-

-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우리에겐 여행을 위한 낭만열차이지만,

러시아 사람들에겐 생활 교통 수단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 열차를 타고 고향을 방문하거나 일터로 가고,

군인이면 휴가나가거나 복귀할 때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열차를 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익숙함이 느껴졌다.



우리의 자리는 안쪽 2/3 지점이었다.

자리를 찾아가는동안 사람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첫번째 탑승자였던 것이다.

자리를 찾고 우리는 배낭을 의자밑에 쑥 집어넣었다.

짐 정리가 끝나니까 사람들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1층 2층 한 세트로 자리를 예약했기 때문에

자고 싶은 사람이 2층 사용하기로하고 평소엔 1층에 모여있었다.




우리의 바로 앞 시트에 계셨던 러시아인 아주머니다.

우리가 짐을 정리하고 멀뚱멀뚱 가만히 앉아있을때

아주머니가 갑자기 오셔서 능숙하게 짐을 정리하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우리는 러시아어를 하나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혹시나 '말을 걸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온 러시아어 회화책을 배낭에서 꺼냈다.

회화책을 찬찬히 읽어보고있는데,

아주머니가 "즈드라스트부이쩨" 라고 웃으며 인사를 해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회화책에 한국말로 적힌 발음표기를 보고

"즈 드 라 스 트 부 이 쩨"

라고 대답했다.

러시아어는 억양도 중요하고 발음도 중요해서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알아듣지 못 한다.

그래도 이 아주머니는 대충 알아듣고 눈웃음을 지어보이셨다.

동화속에서나 느껴질법한 따뜻한 미소였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러시아 차를 주셨는데,

우리가 마실 컵이 없다고 바디랭귀지를 하자,

차장이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차장한테 달라고하면 준다'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웅이가 출동했다.



세웅이는 차장 앞에서 다짜고짜

컵으로 뭘 마시는 바디랭귀지를 했다.

그러자 차장이 컵을 주셨다 스푼도 함께...


우리의 차장은 아까 내가 열차를 찾기위해

다짜고짜 티켓을 들이밀었던 아주머니였다.

차장 아주머니는 정말 친절하시다.

러시아인들은 보통 모르는 사람 앞에선 무표정으로 차갑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차장 아주머니는 열차칸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와 친절함으로 대해주셨다.

비록 언어는 아예 안통했지만, 

만국의 공통언어 바디랭귀지와, 눈치

이 두가지로 우리는 달리는 열차에서 필요한 서비스들을 모두 이용할 수 있었다.

언어가 안통하면 어떻게 여행을 할까? 라는 두려움이 가장 컸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 두려움은 부풀려진 것이었단걸 깨달았다.

'겪어보기 전의 두려움은 부풀려진 것'이라는 말은 자기계발서에서 많이 봤지만,

직접 몸으로 체험하여 깨달으니 훨씬 더 크게 와닿았다.



우선 저 락앤락 라면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여행 경비를 최대한 줄여야했기 때문에  

라면도 가장 싼 가격에 마련했다.

스프는 식당에서 사용하는 대용량 쇠고기면 스프 한봉지를 샀고,

면은 식당에서 쓰는 라면사리 30개짜리를 구입해서 왔다.

결과적으로 가격이 배로 줄고 부피도 배로 줄었지만,

먹고나서 화장실에서 설거지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


락앤락 라면 만드는 과정은

우선 통에 면을 넣고 스프를 일정량 알아서 넣는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끝인데,

열차에는 뜨거운 물만 나오는 정수기가 있다. (찬물은 사먹어야한다.)

왜 뜨거운 물만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러시아 사람들도 열차에서 컵라면을 주로 즐겨먹는다.


우리는 슬류잔카까지 3일동안 열차를 타고 가야했는데,

3일 내내 주 식량이 락앤락 라면이었다.

평소에 라면을 좋아하는 우리 둘은

여행계획할 때 돈도 아낄겸 열차에선 라면만 먹기로 계획하고

다른 음식은 하나도 안챙겨왔다.

매우 멍청했다.

라면도 하루 세끼 삼일 내내 먹으면 질린다는 것을

처음으로 직접 경험해봤다.

자취하면서 라면만 먹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했던 과거가 부끄러워졌다.



열차는 정해진 도시마다 정차를 한다.

정차를 하는 시간은 도시의 크기에 따라 틀리다.

대도시에서는 40분 정차하기도 한다.

정차 시간은 열차 운영표에 나와있고,

그것을 참고해서 늦지않게 돌아와야한다.


우리는 라면만 먹는게 너무 질려서

뭐라도 사먹기위해 바깥에 나갔다.

바구니를 들고 할머니들께서 빵을 팔고계셨다.

열차를 이용하는 러시아인들은 그 할머니들에게 빵을 사고

열차에서 그것을 먹는다. (아니면 매점 이용)

언어가 안통하긴하지만 배고픔에 못이겨서

적당한 단위의 돈을 드리며 

잔돈은 알아서 주시겠지라는 생각으로

빵 하나를 구입했다.

가격은 500원도 안했던걸로 기억한다.

맛은 당연히 없었다.

블린처럼 無 맛이었다.

앞으로 열차에서 먹는 러시아 음식의 대부분이 無맛이다.

말 그대로 맛이 안느껴진다.

그래도 먹었다.

라면 국물에 찍어먹기도 하고 최대한 맛있게 먹었다.

라면만 먹는 것 보단 나았기 때문이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 시간표 -



파란색 양말은 착하디 착하신 우리 앞좌석 아주머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은 둥글게 말아놓았던 매트를 펴서 깔기 시작했다.

저기 머리를 감싸고있는 효도르 닮은 형님은

자리가 불편해서 우리 자리에 같이 앉아있다가

우리가 눕기 위해 매트 펴려고 하니까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효도르 닮은 형님은 기차를 탔을때부터 무표정이었고,

곧 세상이 끝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계셨다.

그러다가 열차에 있는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3번 정독하시고,

나중엔 그 잡지에 있는 스도쿠를 열심히 하고 계시다가

잘 안되시는지 머리를 감싸고 계셨다.(위 사진 모습)


그리고 우리가 "즈드라스트부이쩨" 했을땐

무표정으로 대충 대답했는데,

우리 앞자리 친절아주머니랑 이야기 할땐

몇 번 말 섞더니 웃음꽃이 활짝피고 말도 엄청 많이 하셨다.

러시아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선 미술이나 음악을 잘하거나 

여자가 아닌 이상  일단 언어를 공부하고 와야할 듯 하다. 


효도르 앞에 몸집이 있으신 아주머니는

나중에 탑승하셨는데,

오자마자 짐정리하고 스도쿠를 꺼내서 하고 계셨다.

이분도 스도쿠 하다가 잘 안되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본 

러시아인들의 특징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었고,

책을 읽거나 앞자리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스도쿠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아날로그적이었고, 정감가는 분위기였다.


나는 러시아 사람들과 3등석에서 부대끼며

몰래 보드카를 마시면서 노는

그런 상상을 하고 왔지만

우리 주변 좌석이 모두 얌전하시고 나이드신 분들이어서

상상이 실현되지 않았다.



-

-

-

-



하지만 그 상상보다 더 큰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포스팅 :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야기 - 2편 


겪은 일들이 워낙 많다보니 두서없이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다음편에선 좀 더 잘 다듬어서 작성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